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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5일 일요일

하나님의 신성을 깨닫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자~~하나님의교회

하나님께서는 혈육에 속하여 마귀의 사슬에 매인 자녀들을 놓아주시려고 이땅에 오셔서

유월절 새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들은 '유월절 지키면

이단이다'라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이 말은 결국 유월절 진리를 통해 사망을 없이하여 주신

예수님께 하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종교인들도 그런 말을 하더니 오늘날 이시대에도

예수님께서 지키라 가르침을 주신 내용을 이단이라 하고 있습니다.

새언약 유월절은 사도 바울이 전했고 베드로가 전했던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전했던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단이라 한다면 그들은 바울을 이단이라 고소했던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변호사 더둘로 같은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다시육체로 입고 오신다면 세상은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다시 한번

'이단'이라며 배척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성삼위일체를 시인하면서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고 훼방하니 예수님께서도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요15당 25절)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두번째 이 땅에 오실 것을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 9: 27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두번째 오신다면 반드시 영접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오시는 재림그리스도는 무엇을 가지고 오실까요?

예수님께서 이땅에 뿌려 놓고 간 복음 인 새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오시겠죠!!

이세상가운데 새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사망에서 이끌어 주신 분이 바로

재림그리스도이신 안상홍님이십니다.

이땅에 오셔서 새언약을 세우시고 세워주신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깨닫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입니다.






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안상홍님께서 이땅에 두번째 오신 이유?

왜일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다. 인류는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 또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무엇이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 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자.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이것이다. 바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이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있다. 굳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주려고 하는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수한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처럼 무익한
육신의 목숨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신 것이다.
유한한 삶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류는 왜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은 창조의 역사가 수록된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다.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다. 단 하나, 바로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단언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결과는 인류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있었다.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그 방법은 바로 생명과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영생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다. 결국 생명과의 길은 막혔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지금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손댈 수 없었던 그 생명과를 가지고 말이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며 주신 것이
당신의 살과 피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마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인가.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감추어버린 것.
바로 생명과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고 하시며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꼭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

마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된다. 그러니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인류는 구원 얻기 위해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신 것이다(누가복음 22:15).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에게 지키라고 예수님께서 전하여 주신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림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처음부터
인류를 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이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인 ‘유월절’을 회복해야만 한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셔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는 것.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그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진리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이 땅에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하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https://www.pasteve.com/?m=bbs&bid=border&uid=1040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어느 교회일까?.... 하나님의교회 (안증회 )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진리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늘 기쁜마음으로 봉사에 앞장서며, 아이들이나 어른들까지도
모두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새언약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봉사하는 아름다운 손길을 .....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아버지의 유언 (새언약유월절)

아버지의 유언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가 부모님이라면 더욱 뼈저리다.
부모님의 유언은 불효한 청개구리조차 따르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부모님의 마지막 부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는 한이 있어도 들어주고 싶다.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마땅한 것이었다. 어쩌면, 하나님을 모독한 거짓 선지자의 최후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보여준 과시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는 실패한 인생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로마인들에게는 흉악범의 최후, 혹은 많은 유대인 중 그저 한 사람의 최후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의 완성이었다. 인류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고결한 선물이었다.
체포와 심문
예수님께서 재판에 회부된 것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난 직후였다. 제자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몬 결정적 원인이기도 했지만 매우 중요한 예언을 이루는 결정적 계기였다. 예수님은 밤새 산헤드린(유대의 의회 겸 법원)의 심문을 받았다. 이는 사실상 위법이었다. 해가 저문 후에는 재판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에 반하는 행위였다. 예수님께서 수욕을 당하며 재판을 받는 동안 제자들은 도망쳤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외면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심문 끝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형하기로 결의했다.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대는 사형집행권이 없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로마의 힘을 빌려야 했다. 당시 유대에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명으로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부임해 있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저로 끌고 갔다. 2차 심문이 이어졌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범죄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유대인들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유대인들의 요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사형시키는 것이었다. 혐의는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 한 죄, 하나님이라 한 죄, 이를 테면 신성모독죄에 해당했다.
사형과 운명
재판이 마치자마자 즉시 사형이 집행되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십자가형의 첫 번째 수순이었다. 로마 군병들이 휘두르는 채찍에는 쇳조각이나 동물의 뼛조각이 달려 있었는데, 죄수가 창상을 입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창상을 입어 출혈을 함으로써 십자가상에서 빨리 죽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채찍질의 고통이 결코 약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것은 물론, 때로는 뼈가 드러나거나 내장이 쏟아져나올 만큼의 깊은 상처를 입혔다.

군병들은 채찍질로 예수님의 온몸을 난도질한 후,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씌우고 왕들이 입는 홍포를 입히고 손에 갈대를 들게 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희롱했다. 어떤 이는 예수님께 침을 뱉고 어떤 이는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영적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을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군병들과 유대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해골)라 불리는 언덕으로 끌려가셨다. 십자가에 못박기 전, 예수님께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마취제였지만 예수님은 사양하셨다. 본격적인 십자가형이 시작됐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고정시킨 후 굵고 긴 못을 예수님의 양손과 발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금요일 오전 아홉 시경의 일이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죄패가 붙어 있었고, 양편에는 두 강도가 나란히 십자가형을 당하고 있었다.

십자가형은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형벌이다. 사형수들은 십자가에 달린 채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한다. 못이 관통한 손과 발에서는 자연히 심한 출혈이 뒤따른다. 때로는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양손이 찢어지기도 한다. 출혈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심한 두통과 고열을 동반한다. 자연히 땀이 나면서 탈수증세가 찾아온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햇볕은 사형수의 고통을 극대화시킨다. 숨쉬는 것조차 힘겹다. 축 늘어진 몸을 가다듬어 한 줌의 숨을 들이마시려면 다리에 힘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순간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온다. 이 일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된다. 사형수들은 이렇게 창상, 출혈, 두통, 고열, 탈진, 배고픔, 갈증, 한기 등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혼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서서히 극한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만물조차 그 참혹한 현장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일까. 정오쯤 되자 해가 빛을 잃고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어둠은 세 시간 동안 지속됐다. 오후 세 시경,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했다. 예수님의 운명을 암시했다. 유대인들은 빨리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수습해달라고 재촉했다. 다리를 꺾는 이유는 숨을 쉬기 위해 본능적으로 다리를 지탱하며 안간힘을 쓰는 사형수들이 빨리 숨을 멎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안락사였다. 로마 군병들은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상태였기 때문에 로마 군병 롱기누스는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또 다른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다(출애굽기 12:46, 고린도전서 5:7, 요한복음 19:32~37).
유월절과 유언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희생당하시며 하셨던 일곱 마디, 이른바 가상칠언 중 하나다. 도대체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셨던 것일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음식을 먹는 자리였다. 그날 저녁 하셨던 말씀이 유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은 무교절의 첫날, 유월절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심부름을 시키셨다. 유월절 만찬을 먹을 객실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마가의 소유로 전해지는 큰 다락방이 준비되었고 저녁이 되어 열두 제자와 함께 자리하셨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3년에 걸쳐 완성한 벽화 ‘최후의 만찬’은 이 일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께서는 떡을 들어 축복 기도를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 축복 기도를 하시고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하신 말씀에 대한 약속 이행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성력 1월 14일 유월절이 되면 모세의 율법대로 일 년 된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를 불에 구워 먹었다. 그러나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의 살과 피에 참예하도록 새 율법을 세워주셨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며 보혈을 흘리신 희생의 결정체가 바로 유월절인 것이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16~2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받기 전, 죄 사함과 영생이 약속된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키시며 유언을 남기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희생하심으로 효력을 발생시켰다.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이루신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새 언약 유월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신비 그리고 위대하신 사랑과 희생이 담겨 있다. 아버지 하나님의 유언은 자녀들에게 있어 사무치도록 뼈저린 것이다.

2013년 2월 11일 월요일

마지막 재앙의 도피처 시온(하나님의교회)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경고하실 때 항상 구원의 도피처를 알려 주신다.
온 세상을 홍수로 멸한 노아 때에는 노아의 방주가 구원의 도피처였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창세기 6:13~14)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멸할 때는 소알성이 도피처였다.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19:13~22)

이러한 지나간 역사는 마지막 날에 대한 그림자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누가복음 17:26~30)

그렇다면 마지막 재앙의 때 구원의 도피처는 어디일까? 성경은 ‘시온’이라고 예언하였다.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예레미야 4:5~6)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4:1)

시온은 어디인가? 성경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다.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 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이사야 33:20)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지도 않으면서 시온이라 자처하는 것은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성경대로 새 언약 3차의 7개 절기를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하다.